말씀
서울만나교회의 주일 설교와 말씀 요약을 나눕니다. 매주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 주간을 살아갈 은혜와 힘을 얻으세요.
믿음의 정수 시리즈 14 - 청지기의 삶(1)
고후 5:14~15
공민상 담임목사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1. 우리는 죽었고,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엡 2:1). 아담 안에서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존재였다. 영원한 심판과 저주와 멸망 아래 있었으며 삶의 본질과 의미, 목적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았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참된 행복과 안식이 있을 수 없다. 참된 행복도, 참된 안식도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찾아오셨다. 구원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붙잡은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먼저 찾아오신 사건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저주 아래 있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났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고 삶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죽음과 심판 아래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2. 그러므로 나는 나의 것이 아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생명과 삶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말씀한다(고 전. 6:19~20).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물건처럼 소유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삼으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조금씩 하나님께 양도하는 과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 가는 과정이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생명도, 시간도, 물질도, 건강도, 재능도 처음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내가 가진 능력과 기회, 내가 이룬 것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3. 그래서 나는 청지기이다.
성경에서 청지기는 '오이코노모스(헬)'로 집안의 살림을 맡아 관리하고 배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오늘날 말로 표현하면 위탁 받은 관리자이다. 성경이 보여 주는 청지기의 모습은 소유자가 아니라 주인에게 무엇인가를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다.
청지기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것을 맡은 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것을 맡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주인은 아니다. 오랫동안 관리했다고 해서 자신의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맡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맡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관리했는가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시기 원하시는가를 물어야 한다. 주님이 맡겨 주신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의 삶이다.
4. 그런데 우리는 자꾸 주인이 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이 있느냐가 아니라 너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신다. 죄인의 마음은 물질을 주인으로 만들고, 물질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한다(딤전 6:10).
부자 청년(마 19:16~22)의 문제는 그에게 돈이 많았다는 데 있지 않다. 돈이 그의 마음에서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너의 인생의 진짜 주인은 누구냐? 이 질문은 부자 청년에게만 던져진 질문이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 물으시는 질문이다. 내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실제로 의지하고 따르는 주인이 누구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5. 탁월한 청지기는 결산의 날을 알고(대비하고)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고후 5:10).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을 결산하기 위해 주님 앞에 서게 된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시간과 물질, 건강과 성공, 가정과 자녀, 재능과 기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주님 앞에서 돌아보는 날이 온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소유자의 삶이 아니라 나그네(여행자, 순례자)의 삶이다. 우리는 잠시 맡아서 관리하고 있다가 주인에게 돌려드릴 사람들이다. 시간의 주인도, 물질의 주인도, 내 삶의 주인도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로 살아가야 한다.
나는 죽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청지기이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 앞에서 내게 맡겨진 삶을 결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왜냐면 나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
'오벧에돔'과 그의 가족들
역대상 13장 1~14절
공민상 담임목사
하나님의 궤(언약궤, 법, 증거궤)는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친히그 모임과 격을 지시하셔서 만들게 하신 거득한 궤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궤를 성막의 지성소에 두게 하셨으며, 언약궤에는 실계명을 기록한 동판이 보관되었다. 또 한 성경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언약궤와 관련된 거룩한 증표로 언급한다. 언약궤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며, 그들을 다스리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상징이었다.
언약궤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할 때 요단강이 멈추고,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 없이 언약궤의 상징과 의미만 붙잡고 그것을 마치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도구처럼 사용하려 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언약궤를 빼앗겼고, 우여곡절 끝에 <기랏여아림>에 돌아오게 된 후 무려 20년 동안 방치되었다. 다윗은 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로 결심 한다. 빼앗겼던 하나님의 궤를 다시 모셔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1. 익숙해져도 소중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율법(하나님의 명력)에 따르면 연약궤를 옮기는 방법은 오직 "레위지파 고핫 자손'만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한다(민 4:15, 민 7:9).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언약궤를 새 수리에 신고 옮겼다. 수레를 끌던 소들이 뛰자 수레를 끌던'옷사'가 손을 뻗어 언약궤를 붙잡았고, 그 순간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가 임하여 그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맡았다. 행렬은 멈추었다. 놀랍게도 '옷사'는 언약궤가 20년 동안 머물렀던 <기여림,"아비나답"의 아들>이다. 그에게 언약궤는 오랫동안 보아 온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가까이 있었고, 잘 알고 있다고 해도 거룩한 것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예배를 평범하게 여겨서도,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다루어서도 안 된다. 오랫동안 직분을 맡았다고 그 직분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도 안된다. 오래 믿을수록 하나님을 더 경외해야 하고, 말씀을 많이 알수록 더 낮아져야 하며, 직분이 있을수록 더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 처음 직분을 받을 때의 감사와 섬기겠다는 마음을 잊어버린 채 시간 이 지나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우리 안에도 웃사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예배와 찬송, 성경과 십자가, 은혜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다 보면 거룩한 것들이 평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예배와 교회와 직분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익숙해져도 소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삼상 2:30)
2. 우리 가정의 소망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있다.
다윗은 가장 좋은 새 수레를 준비했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에 순종 하지 않았다. 때로는 단순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참되고 바른 믿음이다.
큰 충격과 두려움을 느낀 다윗은 언약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맡겼다.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머물렀고, 하나님께서는 오벨에돔과 그 가족,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대상 13:14) 어떤 혈통이나 지위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 해서 하나님의 복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님은 물론이다. 언제나-어디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이다.
오벨에돔이 언약궤 앞에서 특별히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오벨에돔과 그의 가정'에 복을 주셨다. 생명의 주, 구원의 주, 만복의 주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 피를 의 지하여서만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3. 받은 온혜는 일상과 다음 세대로 이어져야 한다.
언약궤는 무려 석 달 동안, 오벨에돔의 일상 한복판에 있었다. 우리도 예배를 마치면 다시 집으로, 학교와 직장으로 돌아간다. 그때부터 예배가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신앙은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교회와 집에서 삶이 다르다면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에서 사랑을 배웠고, 교회에서 용서와 사랑과 섬김을 받았다면 가족에게 먼저 사랑과 섬김을 흘려보내야 한다.
오벨에돔에게 임한 은혜는 그의 세대에서 끝나지 않았다(대상 26:5).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유산은 믿음이다.
하나님께 익숙해지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거룩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이다. 우리 가정의 소망은 우리의 능력과 조건에 있지 않고 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있다. 그리고 받은 은혜는 가정과 일상으로, 자녀와 다음 세대로 흘러가야 한다.- 아멘
믿음의 정수 시리즈 13 - 성화(3)
갈 5:25
공민상 담임목사
성화를 따라 걸으라
본문은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말씀한다. 성화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신다. 그렇다면 성령님과 함께 성화를 이루어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를 살리신 성령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을 얻었다면, 삶의 방식도 성령님을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신앙생활이 힘들어지는 이유는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 주셨기 때문에 그 사랑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고, 우리는 그 사랑에 응답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신앙이며, 성화의 출발점이다.
본문 '성령으로 행하다(헬. 스토이코멘)'는 마치 <군인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나아가거나 일정한 기준에 맞추어 행군하며 걷는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성령님께 보조를 맞추어 걸으라고 말한다. 믿음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분도 성령님이라면 우리의 걸음도 성령님께서 맞추어어야 한다. 빨리 가는 것이 아닌, 누구의 인도를 받고, 누구의 지시를 따르는지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의 방향과 선택을 교정하신다. 우리는 그 말씀에 우리의 걸음을 맞추어야 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실 때 그 말씀에 발맞추어 걸어야 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은 원하지만, 성령님의 인도는 거부할 때가 있다.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소리와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 따라 산다. 그래서 성령님을 따라 걷는 삶은 기도부터 달라진다. 성령님께 나의 삶을 다스려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성령님의 지시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다.(롬 8:14)
우리 삶에는 아직 내가 주인노릇하는 영역들이 남아 있다. 물질을 사용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녀를 향한 기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습관과 같은 것들까지 주님께 내어드리고 말씀과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나의 생각과 능력의 수준으르 넘어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시하고, 순종하도록 이끄시는 분이 성령님이다.깨달은 말씀이 있으면 순종을 결코 미루지 말아야한다.
성숙한 사람은 깨달음과 순종 사이의 거리를 좁혀 간다. 우리가 듣고, 깨닫고, 고백하고, 결단한 것과 실제 삶 사이에 거리가 있다면 그 간격을 줄여야 한다. 순종을 반복해서 미루다 보면 불순종이 익숙해지고 미루어진 순종은 불순종이 될 수 있다. 믿음이 자랄수록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따라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
불순종했는데도 당장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려 주시기 때문이다. 넘어졌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너무 큰 일만 기다리다가 작은 순종을 놓쳐서는 안된다.성령님을 따라 걸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성령님을 따라 걸으면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닌 주님께서 가고자 하시는 길로 가게 된다. 그 길에는 평안과 승리가 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면서 어려움도 만나고 반대에 부딪히며 고난도 겪지만, 성령님께서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를 더 친절한 사람, 더 관용하는 사람으로 빚어 가신다.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게 하시는 것이 성화의 목적이다. 우리가 쓰러지고 넘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성령님은 우리를 이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데 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희생하며, 다른 사람의 짐을 기꺼이 지는 사람으로 자라가야 한다.
성화는 내 힘으로 나를 바꾸어 내는 일이 아니라 성령님을 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오늘 한 걸음, 내일 또 한 걸음, 성령님의 보폭에 내 걸음을 맞추어 사는 것이다. 성령님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리고, 깨달은 말씀에 즉시 순종하며,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아멘-
믿음의 정수 시리즈13 - 성화(2)
롬 8:13-14
공민상 담임목사
성화의 주체가 되시는 성령님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면서도 우리는 같은 죄에 넘어지고, 반복되는 실패 앞에서 낙심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변 화시키십니까? <성화>는 구원받은 사람이 죄에서 멀어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청의>가 신분의 변화'라면 <성화>는 '삶의 변화'입니다. 그 주체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죄와 싸우고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1.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어떤 힘이나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성부•성자와 동일한 신성과 영광을 지니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님께서는 제자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은 그 약속대로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며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2.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성자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성취하신 구원을 성령님께서 우리의 것이 되게 하십니다. 죄를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우리 안에 거하시며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와 믿음을 붙드십니다. 연약하고 흔들릴 때에도 성령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3. 성령님은 우리가 죄와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본문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죄는 품고 있으면 우리를 지배하기에 타협하지 말고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합리화하지 않고 넘어질 때마다 회개하며 다시 싸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실제로 죄를 거절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구체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성화입니다.
4. 성령의 인도하심은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님은 우리가 죄를 떠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끄십니다. 그 인도하심을 분별하는 기준은 특별한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성경과 반대로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용서하고 정직하며 욕심을 내려놓고 사랑으로 섬기는 작은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5. 성령충만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상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충만은 성령님께서 나를 온전히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생각과 감정, 말과 욕망, 시간과 재정, 관계와 선택을 성령님께 맡기는 삶입니다. 그 결과는 일상에서 맺히는 성령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화내기 전에 참고 기도하며,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며, 은밀한 유혹도 거절하게 됩니다. 딱딱하고 떫은 감이 부드럽고 달게 익어 가듯,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성품으로 성숙하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감정과 욕심, 자존심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까? 성령님을 의지하여 죄와 싸우고,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고, 깨달은 말씀에 순종합시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날마다 예 수님을 더욱 닮아가기를 바랍니다.
"성령 하나님, 우리의 생각과 입술, 감정과 욕망을 다스려 주옵소서. 죄와 싸울 힘을 주시고,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게 하옵소서." - 아멘-
믿음의 정수 시리즈 13- 성화(1)
빌립보서 1장 6절
공민상 담임목사
"이미, 아직, 그러나 반드시"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화를 내고, 걱정하고,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면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끊은 줄 알았던 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예전의 내 모습이 다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책하거나 심지어 구원받았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의 느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구원받았고,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기분이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성화는 '이미 그러나 아직'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 자녀 되었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반드시'입니다.
1. 이미(Already) :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감정이나 현재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더 거룩해지고, 기도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미 결정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완벽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은 이미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죄가 우리를 지배했지만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종교는 더 노력하고 더 선하게 살아야 신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받아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이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화는 하나님께 인정 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가 삶 속에서 나타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삶 가운데 조금씩 드러나는 것입니다.
2. 아직(not yet) :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죄와의 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찔리고, 설교를 듣다가 내 안의 죄를 발견합니다. 때로는 예전보다 죄가 더 많아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새롭게 많아진 것이 아니라 빛이 비치면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죄가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햇빛이 먼지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울 때는 보이지 않던 먼지가 햇 빛 속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드리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진리의 빛을 비추시면 숨겨져 있 던 허물과 연약함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주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자신의 죄와 연약함도 더 깊이 알고,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보는 사람입니 다. 죄를 발견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성화는 죄가 전혀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잘못했으면 자복하고, 다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인격적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3. 반드시(Certainly) :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십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우리는 흔들릴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의 구원과 성화는 오직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화 되어야 하며, 지금도 성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일을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완성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 다.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완성하십니다. 변화 가 더디게 느껴지고, 여전히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조금 씩 예수님을 닮아가며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아멘-
믿음의 정수 시리즈 12- 기도(4)
렘 33:3
공민상 담임목사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기도"
기도는 호흡이며, 대화이며,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은 계속해야 하며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도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고 했습니다. 기도는 계속하는 것입니다. 일회성 이벤트도 아니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한 번 기도하고 끝내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의 페달을 멈추면 영혼은 흔들리고 영적인 힘이 빠집니다. 기도가 없는 우리 삶은 염려와 불안이 커지고 감사가 사라지며, 내 생각과 고집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자전거로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힘들고 속도도 떨어집니다. 멀리 있는 정상만 바라보면 오히려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 다. 그럴 때는 내 앞에 주어진 길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걸음씩 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오르막길이 있습니다. 멀리 만 바라보지 말고 오늘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 주어진 만큼 기도하면 됩니다. 너희 중에 고난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는 말씀처럼 어려울 때도 기도하고, 기쁠 때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라고 약속하십니다. "크라 엘라이"는 '나를 불러라, 나를 찾아라, 내게 외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주신 답입니다. 예수님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7) 한 번 구하고 그만 두라는 말이 아니라 계속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구하는 사람은 받고, 찾는 사람은 찾게되며,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담대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성령의 충만함을 주세요"라고 기도할 뿐 아니라 "주여, 저에게 사람을 주시고 닫혀 있는 문을 열어 주세요"라고 우리의 실제적인 필요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까지 내어 주셨고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그런 주님께 우리는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습 니다.
하나님은 또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크고 은밀한 일'을 뜻하는 "베추로트"에는 너무 높고 견고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예레미야의 눈에는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노력하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질 수 있지만 우리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 힘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합니다. 기도는 내 노력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되 기도도 함께 해야 합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 같지만 아무리 해도 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사 40:31)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십니다. 기도의 힘은 기도하는 사람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힘에 있습니다. 우리는 작고 부족하며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작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뚫으시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복용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골 4:3) 주님이 문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내 앞에 아무리 큰 벽이 있어도 문이 있으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문도, 인생의 큰 장벽도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면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제목을 가지고 직접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매달을 멈추지 말고, 오늘 주어진 길을 한 걸음씩 걸으며 계속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기도로 승부를 보십 시오. 내 힘보다 더 큰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십시오. -아멘-
믿음의 정수 시리즈 12- 기도(3)
요일 5:14~15
공민상 담임목사
"응답을 넘어, 깊고 넓은 기도로"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믿음의 표현이고, 은혜의 방편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고, 지나 온 것에 감사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신실하심 믿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지, 지금 내 기도는 성장해 가고 있는지 어 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주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요일 5:14)는 약속이 있기에 리는 담대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과 필요를 하나님께 분명하게 읽 씀드려야 하고, 기도한 뒤에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넣 해(성경, 설교)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한 뒤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길로 인도 하시는지 살펴보아야 합 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요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고 다양한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기도는 나의 고집과 뜻을 주님께 관철시키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입니까?
'응답 받는 기도의 원리' 첫째는 먼저 의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반드시 이루어질거야 라는 자기최면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 하신다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나의 고집과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준과 핵심은 역시 성경말씀입니다. 셋 째, 바른 동기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사업과 삶의 형편을 위해 기도할 때 형식은 기도이나, 마음 속은 욕심과 야망으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 속마음과 동기까지 변화시켜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끝으로, 주님과의 관계 도 잘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내 삶 속에 죄가 있다면 단호히 끊고 자복하며 주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기도의 응답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Yes. No. Wait 그리고 Better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Yes(그래. 네 소원대로 해주마)" 만이 응답은 아닙니다. 사도바울 은 자신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허락치 않으시고, "나의 은혜가 네게 족하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언제나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 이 정말 주께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 하려면 성경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며, 공부하고, 알아야 합니다.기도는 깊어지고, 넓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점점 깊어져야 합니다. 처음엔 문제해결을 위해 기도 하겠지만, 그 다음은 이 문제를 통해 깨닫고 변화되도록 나의 내면을 향해야 합니다. 깊은 기도는 자기 속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넓어져야 합니다. 처음에는 나와 자녀, 우리가족을 위해 기도 하겠지만 기도의 반경은 교회와 이웃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선교사님들과 세계 열방을 위해,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넓어질수록 내 관심의 반경도 넓어지고, 내가 애정하고 사랑하는 반경 만큼 더욱 기도하게 됩니다.그러면 끝으로 어떻게 더 깊고, 더 넓은 기도를 훈련할 수 있을까요?
먼저 성경말씀을 읽고, 배워가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 삶의 분명한 기준입니다. 평소에 내가 무엇을 가지고 기도 했는지 '기도노트'를 쓰는 것이 좋고, 그렇게 되면 주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셨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의 범위를 매일 조금씩 더 넓혀가 십시오. 규칙적인 기도를 통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와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믿음의 정수 시리즈 12- 기도 (2)
빌 4:6~7
공민상 담임목사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특권이며 믿음의 표현이다. 기도는 은혜의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 은혜를 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며, 기도할 때 무엇이 달라지는가?
1. 염려를 기도로 바꾸어야 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 육체적인 고통, 인간관계와 자녀 문제, 직장과 미래의 문제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일에 기도하고 간구하라고 말씀하신다. 걱 정 없는 사람도,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걱정이 끊어질 날이 없다면 기도 역시 끊어질 날이 없어야 한다. 염려와 기 도의 공통점은 그 문제를 계속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염려와 기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염려는 그 문제를 내가 붙들 고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기도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는 것이다(벧전 5:7).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염려와 걱정이 시작될 때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염려의 순간을 기도의 시작점으로 삼아야 한다.
2.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지금 내 마음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 리는 것이다. 무엇이 두려운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고 있는지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가지고 가야 한다. 염려는 막연할수록 커진다. 그러나 기도는 구체적일수록 깊어진다. 구체적인 기도는 능력이 나온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지를 하나씩 말씀드리다 보면 내 마음도 하나님 앞에서 정리 되기 시작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진실하게 나아가는 것이다(막 9:24).
그리고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기도의 응답이 없어도 감사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드리는 감사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실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과 시간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 삶의 마지막 결정권은 하나 님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마침내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으로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지 키시리라'는 말은 헬라어 프루레오(opoupeu)로, 군인이 성을 지키고 보초를 서며 적의 침입을 막는 모습을 의미한다.
두려움과 염려가 마음을 공격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영혼 앞에서 보초를 서는 것과 같다. 기도했다고 상황이 바로 달라 지지 않을 수도 있다. 질병이 곧바로 낫지 않을 수 있고, 경제적인 문제가 당장에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관계가 즉시 회복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평강으로 지켜 주신다(요 14:27). 두려움이 평강으로, 혼란이 질서로,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솔직하고 진실하게 아뢰며 감사함으로 기도 해야 합니다. 청년의 때에, 장년의 때에, 노년의 때에 염려가 시작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 아멘-
믿음의 정수 시리즈 12 - 기도 (1)
요한복음 16:24 (요 16:24)
공민상 담임목사
기도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입니다. 누구나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주문도, 하나님을 설득하는 기술도 아닙니다. 기도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언어이며, 믿음의 표현입니다.
1. 기도는 하나님 자녀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 1:12).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시작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입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롬 8:15).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 큰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은혜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큰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의무이기 전에 특권입니다. 특권은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2. 기도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의 특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는 간구와 신뢰, 의지와 의탁,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수용)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관철하거나 고집을 부리거나 하나님과 결판을 짓는 것이 아니며, 기도의 횟수나 시간을 채우는 행위도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행동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도입니다.
3. 모든 것을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빌 4:6)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사소하게 보이는 일까지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걱정되는 일도, 필요한 것도, 결정해야 할 것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4.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고 투명하며 진실해지는 것입니다.
기도 시간이 길다는 것도, 유창하게 기도한다는 것도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외식하는 사람들처럼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마 6: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실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기쁨과 슬픔, 두려움과 분노까지 숨기지 않고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기도는 결국 ‘진짜로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말씀은 우리의 일상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고,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과 연결하며 살아가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전거를 책으로만 배울 수 없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자전거를 배우듯 기도도 기도하면서 배워 갑니다. 기도에 관한 설교를 많이 듣고 책을 많이 읽어도 실제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의 특권을 누리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기도의 사람이 됩시다. - 아멘 -
인생을 바꾸는 여름
시 78:4~7
공민상 담임목사
인생에는 몇 번의 잊을 수 없는 여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여름에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고 고백합니다. 몇몇 여름 행사는 끝났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행사를 통해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실패한 역사도 자손들에게 들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하나님은 한 영혼을 세우십니다. (4절)
여름 사역의 목적은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한 아이의 믿음이 귀하고, 한 학생의 변화가 소중하며, 한 청년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의 수고와 성도들의 기도, 작은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씨앗을 심으십니다. 그 수고는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은 공동체를 통해 믿음을 이어 가십니다. (5~6절)
믿음은 한 사람에게서 끝나서는 안 되며 세대를 넘어 전해져야 합니다. 혼자서는 오래가기 어렵지만 함께하면 계속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배우고 바른 신앙인으로 자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십니다. (7절)
신앙에도 여름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세월이 지난다고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며,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작은 순종을 이어 갈 때 자랍니다. 이번 여름이 말씀의 여름이 되고, 식었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는 여름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믿음도 자라고 있습니까? 기도가 식어 있다면 다시 무릎을 끓어야 합니다. 말씀에서 멀어졌다면 다시 성경을 펴야 합니 다. 멈추어 있던 섬김이 있다면 작은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번 여름이 말씀의 여름이 되고, 식었던 마음이 다시 뜨거 워지는 여름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기도, 작은 순종, 작은 동참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 결론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 여름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군이나 모든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분드는 사람의 여름이 인생을 바꿉니다. 하나님은 행사를 남기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시는 분입니다.
